이 소설은 인간의 은밀한 욕망에 관한 소설이다. 이 소설은 진실과 허구, 원본과 복제에 관한 환상적인 드라마이다. 이 소설은 장편 속의 독립된 단편들로 의미를 명징하게 하는 특이한 구조의 액자소설이다. 그리고 이 소설은 새로운 개념의 가족을 위한, 진보적인 가족소설이기도 하다.
다양한 의미의 층만큼이나 이 소설은 다양한 소설적 장치를 사용하고 있다. 거울과 대칭, 그림자. 문학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런 상징들은 이 소설을 이해하는 핵심 구조망이 되며, 소설에 만만치 않은 문학적 깊이를 부여한다. 인간관계의 비밀 혹은 우리 일상에 숨겨진 비밀을 다루고 있는 이 소설은, 이러한 장치들로 인해 사변적이라기보다 시각적 . 공간적인 소설이 된다. 주인공 훌리오의 직업이 영화 세트 제작자라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가 만드는 영화의 세트, 그가 면밀히 관찰하는 자기 집과 이웃집 간의 대칭 구조를 통해 우리 일상이 숨기고 있는 깊은 주름이 펼쳐진다. 그 펼쳐진 주름 속에서 드러나는 것은 삶의 신비로움이다. 진실과 허구의 게임, 분신 혹은 그림자 놀이의 다양한 변주를 통한 인간 정체성의 탐색.
영화로 만들면 더없이 기묘하고도 아름다운 영상으로 탄생할 만한 작품이다.
• 이웃집 남자를 부러워한 훌리오, 이혼의 위기에 처하다
아내 라우라와 애정 없는 무미한 결혼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훌리오는 영화 세트 제작자이다. 그는 성실하고 가정적이며, 아이는 아직 없지만 아이를 키우며 행복하게 사는 소박한 삶을 꿈꾼다. 그는 자신의 직업에서 어느 정도 이름을 알린 만큼 손재주가 뛰어나며, 늘 깨끗이 정돈하고 청소하는 것을 좋아하는 평범한 생활인이다. 이 부부의 삶에 어느 날 이웃집 남자 마누엘이 끼어든다. 마누엘은 글 한 편 쓰지 않고도 스스로 작가라 칭하는 인물. 늘 캐주얼한 차림에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훌리오와 달리, 마누엘은 깔끔한 댄디 풍의 신사이다. 더구나 지상에서 한 발을 떼고 사는 사람처럼 늘 추상적이고 모호한 말로 훌리오를 적잖이 당황케 한다. (“가장 순수한 작가는 글을 쓰지 않는 작가지.” “당신들은 소설적 인물이거든. (…) 당신은 암호로 쓰인 텍스트야.”) 은연중에 마누엘에게서 부러움과 열등감을 느끼는 훌리오. 어느 날 갑자기 마누엘은 교통사고를 당해 의식을 잃은 채로 병원에 입원하고, 훌리오는 마누엘 아버지의 위임을 받아 마누엘 아파트의 열쇠를 넘겨받고 그의 보호자 노릇을 해준다.
서먹한 부부관계를 유지하던 어느 날, 훌리오는 라우라에게 별거를 통지받고 졸지에 집에서 쫓겨난다. 달리 갈 데가 없는 그는 마침 비어 있는 이웃집(마누엘의 집)에 숨어든다. 이로써 빈 집에 인기척 없이 유령처럼 사는 훌리오의 삶이 시작된다.
훌리오는 자기 집과 마누엘 집이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완벽한 대칭 구조를 이룬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는 이웃집 부엌과 자기네 부엌이 거울에 반사된 것처럼 얇은 벽을 사이에 두고 나누어진 모양이, 마치 등이 붙은 샴쌍둥이 같은 공간 관계를 가진 듯한 인상을 받았다. 놀랍게도 욕실과 두 방도 이 반사의 법칙을 똑같이 따르고 있었다. 건축 일에 발을 담그고 있는 그는 이러한 거울 배치가 무엇보다 경제적인 논리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건물 전체에 하나의 전체 연결관과 공통 배수관이 있어야 한다는 편리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만약 저마다 집의 부엌과 욕실을 각기 다른 위치에 배치한다면 그 공통관까지 닿는 거리가 늘어날 것이고 그 결과 비용도 엄청나게 커질 것이다. 하느님 맙소사, 훌리오는 마누엘의 집 어둠 한가운데서 생각했다. 무엇이든 경제적인 논리로 결정된 것이군. 성기와 배설 기관이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한 것도 경제적인 이유 때문으로, 요도라는 배출구를 공유하기 위한 것이다. 예를 들어 하느님이 성기를 공간이 제법 넓은 등에다 배치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되면 전체 연결관에서 너무 멀리 벗어나고 그 대가로 전체 가격이 비싸지는 것이다. 최종 상품을 결정하는 것은 하느님도 건축가도 아닌, 오로지 그들을 월등하게 뛰어넘는 경제적 사고에 달려 있다. (본문 44~45쪽)
그리고 마누엘의 침대에서 잠을 자면서 벽 하나를 통해 들려오는 아내 라우라의 움직임 소리를 듣는다.
아침이 되자 얇은 벽 너머로 라우라의 알람 소리가 들렸고, 곧이어 그녀가 일어나 욕실로 가서 수도꼭지를 틀고 옷장을 여닫고, 부엌으로 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야 훌리오는 자기 집이 마누엘에게 소리의 진열장 노릇을 했고, 그 진열장을 통해 바로 지금 자신이 아내를 염탐하듯 마누엘이 두 사람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본문 108쪽)
그러면서 훌리오는 이제 점점 평소에 자기가 부러워했던 마누엘을 닮아간다. 그의 화장품을 쓰고, 그의 헤어제품을 바르고, 그의 옷을 입고… 그리고 늘 타고 다니던 오토바이를 길가에 방치해두고는 서서히 망가져가는 것을 무심하게 바라본다.
샴푸와 린스 이외에도 유리 앰플이 있었다. 겉면의 사용 안내문에 따르면 앰플의 내용물이 모근을 강화하고 탈모를 지연시킨다고 써 있었다. 훌리오는 그것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써버렸다. 욕조에서 나와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니 그 특별한 상품 덕분인지, 자신의 머리가 언제나 부러웠던 이웃 남자의 머리 모양을 하고 있었다. (본문 109쪽)
침실로 돌아와 (마누엘의) 옷장 서랍을 열자, 다양한 색상의 속옷과 양말을 보고 놀랐다. 훌리오에게 팬티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오로지 흰색뿐이었고, 양말은 검은색 일색이었다. 평소에 그는 다른 색의 팬티와 양말을 입는 건 경박한 짓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그는 짙은 빨간색 팬티와 그에 어울리는 양말을 맞추어 입었다. 그리고 이웃 남자에게 썩 잘 어울렸던 검은색 바지와 흰색 셔츠를 골라 입고, 셔츠 위에는 얇은 파란색 재킷을 걸쳤다. 마누엘은 코트 말고는 다른 겨울옷은 입지 않았는데, 아마도 촌스럽다고 여겼던 것 같다. 그는 또한 폭신폭신한 스웨이드 신발을 신어보고는 놀랄 만큼 편하고 가벼워서, 꼭 피부 같군, 하고 중얼거렸다. 그러자 자신이 광고에 나오는 표현을 그대로 썼다는 것을 깨달았다. 드디어,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았다. 마음에 들었다. (본문 110~111쪽)
훌리오는 영화 세트 작업장에서 함께 일하는 음향 감독 엘사에게 은밀한 연정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이처럼 마누엘의 속옷을 입고 출근한 날, 수수한 차림새의 엘사와 만났을 때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음을 느낀다. 훌리오는 이제 이전의 자신을 이루었던 세계와 결별하고 새로이 마누엘의 세계로 들어가려는 것이다.
순간, 그는 엘사가 이제 막 그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새롭게 구축한 현재 생활 이전에 속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 그녀의 속옷을 상상해보려 애쓰며 자신이 그날 입은 속옷과 비교하자 이제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세상에 속한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본문 117쪽)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곧 벽에 부딪힌다. 호기심에 마누엘의 컴퓨터를 켜고 그의 메일함을 뒤진 훌리오는 엄청난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이제 소설은 전환점을 맞이하여 훌리오와 마누엘의 관계를 재구성한다.
이런 관계의 재구성을 위해 작가는 이 소설 전체에서 진실과 허구의 놀이, 원본과 복사본에 대한 상념, 영혼/육체를 대신하는 그림자와 옷에 대한 상상 등을 끊임없이 진열한다. 소설 속의 액자소설로 등장하는 그림자 이야기, 또 하나의 액자소설인 영화 시나리오의 무대 설명 등, 작은 에피소드들을 따라가다보면, 결국 우리는 훌리오와 마누엘의 기묘한 관계를 이해하게 되며, 더 나아가 인간 관계, 인간과 사물의 관계에까지도 시야가 깊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이 소설이 독자를 매혹하는 힘이다.
• 거울 속으로 들어갔다 나온 훌리오 - 거울과 대칭, 그림자의 ‘분신 놀이’
마누엘의 집과 훌리오 집의 기묘한 대칭관계, ‘거울에 비친 것처럼 서로 딱 붙어 있는 두 집’은 마누엘과훌리오가 서로 분신 관계임을 나타내는 지속적인 모티브가 된다. 집의 작업실에서 영화 세트 모형을 만들던 훌리오는,
판지 벽들을 풀로 붙여나가면서 그곳에 칼로 각각의 문과 창문을 뚫는 동안 그는 자신이 마누엘의 집을 다시 한번 침범하는 상상을 한다. 그 집에 들른 이후, 보이지 않는 자신의 분신이 맞은편 집에서 똑같은 동작을 실행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바닥에 떨어진 풀을 집으려고 몸을 수그릴 때면, 그의 환영 역시 몸을 수그리고 마누엘의 집에서 손가락으로 환영의 풀을 잡고 있었다. 그리고 욕실로 향할 때면 자신의 그림자도 마누엘 집의 욕실로 향하고 있었다. 건축 공간을 모형으로 축소하는 데 익숙한 그는 상상 속에서 두 개의 집, 즉 거울의 양면처럼 서로 딱 붙어 있는 두 집을 그려볼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는 어쩔 수 없이 양쪽에 동시에 있었다. (본문 57쪽)
작가의 이런 ‘분신 놀이’는 다양한 상황에서 형태를 바꿔서 계속된다. 훌리오가 아버지네 집에서 가족들과 하시시를 피우며 게임을 할 때, 하시시의 환각 작용으로 그는 다음과 같은 상념에 빠져든다.
세 번째 모금을 빨아들이자, 관자놀이에서 그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양쪽 관자놀이가 마치 마주보고 있는 두 개의 방처럼 느껴졌다. 그는 한쪽 방에 있으면서 동시에 다른 방에도 존재했다. 하지만 한쪽 방에 있는 건 실제의 그였고, 다른 방에 있는 건 그의 분신, 혹은 그림자로, 진짜 자신의 모습이 왼쪽 관자놀이에 있는 상(像)인지 오른쪽 관자놀이에 있는 상인지 알아낼 재간이 없었다. 두 방에는 수도원의 간소함이 배인 가구만이 놓여 있었다. 그는 침대 - 차라리 그냥 침상이라고 하는 게 좋을 - 와 투박한 책상과 딱딱한 의자를 상상했다. 또한 머릿속에서는 중앙의 안뜰로 향하는 창문도 있는데, 그 창문을 통해 두 개의 방이 혹은 두 관자놀이가 서로 통했다. 자살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생명을 끝내기 위해 왜 관자놀이에 총을 쏘는지 그제야 깨닫게 되었고, 오른손잡이들은 오른쪽 관자놀이에 살고 있고(이 경우, 왼쪽 관자놀이의 이미지가 그의 분신이 될 것이다), 반대로 왼손잡이들은 왼쪽 관자놀이에 살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자신의 모습이 아닌 관자놀이에 총을 쏜다는 것은 거울을 향해 총을 쏘는 것과 같다. (본문 89~90쪽)
이러한 상념들은 훌리오가 어릴 적부터 ‘유체이탈’을 겪은 특이한 체질을 지녔다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훌리오는 어릴 때부터 어느 순간 갑자기 뇌 속에서 빛이 번쩍하면서 잠시 다른 사람의 몸 속에 들어가는 신기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작가가 인간의 정체성, 혹은 분신에 대한 본격적인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은 이 소설의 액자소설을 이루는 세 편의 그림자 이야기에서이다.
훌리오의 계모의 딸인 아만다의 조그만 딸아이에게 해주는 이야기로 되어 있는 그림자 이야기는 그 자체로 한 편의 훌륭한 환상적인 동화가 된다. 이 소설의 매력은 단선적인 스토리 라인에 있는 게 아니라, 이처럼 다층적인 층위, 즉 텍스트가 겹겹이 겹쳐지면서 나오는 이미지의 울림에 있다.
거울에 비친 상을 부러워하여 거울 속으로 들어갔으나 거울 저쪽의 몸과 이쪽의 몸, 두 몸이 있어야 완벽한 하나가 될 수 있음을 깨닫고 다시 거울 밖으로 나온 남자의 이 기묘한 이야기는, 이렇게 해서 수많은 아름다운 이미지를 통해 복잡한 인간 내면을 훌륭히 형상화한다.
작가의 경력과 작품 수에 비해 이처럼 탁월한 작가의 작품이 아직까지 국내에 한 권도 소개되지 않았음을 안타깝게 여겨, 이후로 후안 호세 미야스의 작품을 더욱 많이 독자들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 지은이와 옮긴이
후안 호세 미야스(Juan José Millás)
현재 스페인어권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하나. 스페인의 이름 높은 주요 문학상을 다수 수상했으며,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인정받고 있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심리적 내향성을 다루고 있으며, 일상의 일들을 환상적인 사건으로 탈바꿈시켜 작가만의 독특한 세계를 창조했다는 평을 받는다.
1946년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출생했다. 마드리드 국립대학에서 철학과 문학을 공부했으나, 프랑코 독재 시절 대학 3학년 때 학업을 포기하고 낮에는 직장인으로, 밤에는 작가로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두번째 소설 『케로베로스는 그림자다Cerbero son las sombras』(1975)로 세사모 상을 수상했으며, 연이어 『익사자의 환영Visión del ahogado』(1977), 『텅 빈 정원El Jardín vacío』(1981), 『젖은 종이Papel mojado』(1983)를 출간했다. 활발한 작품 활동과 병행하여 그는 신문 칼럼을 썼는데, 특히 금요일마다 스페인의 주요 일간지 『엘 빠이스El País』에 기고한 칼럼은 현실적인 주제나 사회 참여에 대한 작가의 예민하고 독창적인 시각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이로 인해 2005년 프란시스코 세레세도와 같은 권위 있는 언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90년 『고독은 이것이었다La soledad era esto』로 나달 상을, 2002년 『프라하의 두 여인Dos mujeres en Praga』으로 프리마베라 상을 수상했고, 2007년에는 자전적 소설 『세상El Mundo』으로 스페인 문학 최고 권위의 상인 플라네타 상을 수상했다.
현재까지 소설, 대본, 논픽션 등 거의 50여 권에 이르는 책을 출간했고, 영어, 불어, 독어, 포르투갈어, 스웨덴어, 네덜란드어, 노르웨이어, 덴마크어 등 15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옮긴이 고인경
한국외국어대학 스페인어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스페인 문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주한 멕시코 대사관에서 근무했으며, 2007년 현재 스페인어권 통번역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이둔의 기억』『전쟁의 풍경』『그리고 갑자기 천사가』『천상의 선율을 담은 모차르트』『세계 최고의 극작가 셰익스피어』등이 있다.
• 추천사와 해외 리뷰
여기 이 남자를 보라. 텅 빈 공간에 현실 같은 인공세트장을 짓는 남자, 옆집 사내를 질투하고 열망하는 남자, 존재하는 동시에 부재하는 남자, 그림자를 훔친 남자, 그의 이름은 훌리오. 적당히 소심하고 조금 우스꽝스러우며 미치도록 가련한! 우리는 모두 이 남자를 닮았다.
- 정이현(소설가)
이 소설에서 미야스는 일상생활의 가장 깊숙한 주름 사이를 살며시 엿보며, 특이하고 낯선 상황을 만들어 내는 재주를 선보이고 있다. 인간관계의 패러디를 담은 진실과 허구 사이의 놀이.
- 엘 쿨투랄(El Cultur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