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시인 최영철의 네번째 시집『야성은 빛나다』가 출간되었다. 최영철은 이번 시집에서 전망 부재의 난감한 90년대의 일상적 삶을 세세하게 투시하면서 헐렁한 일상 속에 감춰진 삶의 진실을 캐고자 하는 열망을 충만된 상상력으로 표현하고 있다. 쩔쩔 끓는 시적 에너지를 바탕으로 일상의 구석구석을 후비고 다니면서 삶의 숨은 진실을 증거하는 그의 시집은 건강한 시적 일상성의 참된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청청한 삶의 진실을 회복하려는 시인의 절박한 고투!
"다같이 가지고 놀다 뒷발로 차버린 의붓자식"(「옛날을 보러」) 같은 80년대, 그 80년대를 압도했던 이념과 미래에 대한 전망이 사라진 90년대에 삶과 문학의 중심을 지탱하는 것은 무엇인가. "반생의 구멍난 상처"(「찐쌀」)로만, "어느날 져다 버리고 온 몹쓸 과거"(「무덤의 추억」)로만 남은 80년대를 지나 세기말을 향한 전망 부재의 난감한 시대에 "변심한 옛사랑의 안부를 묻"(「옛날을 보러」)듯 90년대의 삶은 휘청거릴 수밖에 없는가. 최영철의 네번째 시집『야성은 빛나다』는 치열함을 상실한 자신의 삶을 냉혹하게 절단하면서 "아무리 씹어도 끝장나지 않는 삶"(「껌」)을 지지고 달궈 청청한 삶의 진실을 회복하려는 시인의 절박한 고투가 뭉클하게 전달되는 시집이다. "씹히는 순간 비로소 각질 속에 숨은 깊고 따뜻한 맛을 조금씩 우려내는"(「찐쌀」) 찐쌀처럼 신산한 삶의 배후에 있는 숨은 진실을 캐거나 "모두 기운 마당에 / 바로 서 있기란 힘든 일이지 / 그래도 그러면 쓰나"(「액자의 전향」)처럼 스스로를 강다짐하는 자신과의 힘겨운 싸움이 잔혹한 애절함을 느끼게 한다. "불순의 시간을 견딘 폐허 같은 주름"(「소주」)의 생일지나 "오늘을 밟고 일어설 씩씩한 내일"(「구부정한 꿈」)을 기약하는 시인의 강심이 아름답다 못해 눈물겹다.
일상의 다양한 변주와 세세한 투시를 통한 삶의 본질 통찰
최영철의 시는 90년대적 일상의 다양한 프리즘을 보여준다. 시인이자 연극연출가인 이윤택은 그의 시를 90년대적 도시의 상상력이 빛나는 귀하고 값진 세계라고 평하면서 일상시라는 개념으로 규정하고 있거니와, 이번 시집에서 보여지는 최영철의 시세계는 80년대의 관념이 무너져내린 90년대적 일상의 다양한 변주와 세세한 투시를 통해 일상이란 삶의 현장을 꿰뚫고 치솟아오르는 삶의 본질을 통찰하고 있다. 그의 일상으로서의 시는 일상에 함몰된 시, 즉 비탄, 자조, 야유, 감상에 젖는 도시적 일상 소재시와는 확연히 구별된다. 더군다나 시시콜콜한 신변잡기나 읊조리는 소위 생활시도 아니다. 일상을 찢고, 일상의 표정을 절단내고, 일상을 지지고 껍질 벗겨 생불 태우는 생동적인 힘이 그의 시에는 있다. 일상적 삶의 미미한 실상에 다채롭게 접근하면서 헐렁하고 닳아빠진 일상적 삶에 절절함을 부여하는 상상력의 힘이 있는 것이다. 일상의 구석구석을 후비고 다니면서 충만된 시적 에너지로 삶의 진실을 증거하는 그의 시는 건강한 시적 일상성의 참된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