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신기섭 시인의 첫 시집이자 마지막 시집인 『분홍색 흐느낌』을 문학동네포에지 28번으로 새롭게 복간한다. “존재론적인 고통을 풀어냄에 있어서 고통의 근육을 느끼게 하는 생동감을 가지고 있”다는 평을 받으며 장래가 촉망되는 시인으로 데뷔하였으나 같은 해 폭설이 내리던 12월 4일 불의의 사고로 만 스물여섯에 세상을 떠났다. “몸은 큰 강을 건너갔지만, 비와 바람에도 씻기지 않을 언어의 비석”을 세상에 남기고(문태준). 시집에는 별다른 부의 구분 없이 모두 53편의 시를 실었다. 2006년 초판 발간 당시 편집에는 시인의 은사이기도 했던 문학평론가 신수정, 소설가 윤성희를 비롯한 모교 서울예대의 문우들이 참여했다. 등단 후 문예지에 발표한 시 20여 편과 평소 시집 출간을 염두에 두고 시인 스스로 정리해둔 습작 및 미발표작들을 묶어 선보였다.
200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곽은영 시인의 첫 시집 『검은 고양이 흰 개』를 문학동네포에지 29번으로 새롭게 복간한다. 2008년 5월 랜덤시선 40번으로 첫 시집을 묶었으니 그로부터 꼬박 13년 만이다. 초판에서 몇 편을 덜어내고 첫 시집 이후에 쓰였으나 어느 시집에도 묶이지 않았던 시편들을 채워넣어 총 42편의 시를 실었다. 초판 해설에서 함성호는 곽은영의 시가 중요한 지점은 2000년대 시가 가지고 있는 언어의 채색술을 그대로 간직하면서 언어가 가진 얽힘의 체계를 만들어 시어의 공간과 장소성을 획득해내는 데 성공한 것이라 보았다.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아니라 ‘끝나지 않는 이야기’를 통해 상징의 구조를 들여다보는 곽은영은 2000년대 시의 중요한 징후를 발견하고 그것을 구조적으로 이끌고 있다(「네버랜드, 네버엔딩을 선택한 웬디」). 김혜순 시인은 말한다. 곽은영 시인의 “이 시집에 실린 시를 읽는 사람은 누구나 여성 신화를 읽을 때처럼 단어, 어휘, 그 자체가 아니라 단어, 어휘가 발설되는 순간의 파롤, (……) 거울 나라의 서사 구조에 근거해 공중을 날 듯 매 순간 떠나는 여성적 존재의 비상에 자신들의 모험 항로를 아로새겨보아야 한다”고.
2001년 『시와반시』를 통해 등단한 신동옥 시인의 첫 시집 『악공, 아나키스트 기타』를 문학동네포에지 30번으로 새롭게 복간한다. 2008년 2월 랜덤시선 38번으로 첫 시집을 묶었으니 그로부터 꼬박 13년 만이다. 개정판 작업중 54편을 엮어 만든 초판을 그대로 되살리려 노력했으나 지금의 눈으로 살피려 해도, 그때의 마음으로 품으려 해도 쉬이 보아 넘기기 힘든 5편은 버렸다. 나머지 49편을 초판의 구성과 순서 그대로 실었다(개정판 시인의 말). 김언 시인에 따르면 신동옥은 이 시집에서 이항대립의 허물어짐을 견디는 방식으로, 무의미를 묵묵히 건너가는 방식으로 다시, 윤리를 언급하고 있다. 무언가를 세우기 위한 작업이 아니라 모든 것이 무화되는 지점을 향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존재하는 윤리를(「Electric Lady Land를 유영하는 낯선 토종어들」). “‘중독된 고독’이 빚어내는 ‘흑요석’처럼 빛나는 노래를 들어보라. 아직도 그대들 가슴속에 고독의 현으로 팽팽히 당겨진 심금이 남아 있다면”(박정대).
“그는 내게 시 안으로 들어가라 했다. 나는 그렇게 했다.”
“거부당한 우리들 몇 마디 언어가/이제는 적막한 허공에 떠서/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아침”
“부러지더라도 희미해지지 말자는 약속을 해요”
“같은 세계를 맛보는 기분/ 얼굴과 얼굴이 머무르는 기분”
“아름다운 생활들아/ 손발을 꽁꽁 묶는 최면의 주문들아”
서쪽 하늘에 서성이며 떠나는 공기의 맨발이/오래도록 가슴을 밟고 밟을 뿐./네가 ‘사랑’이라는 혹은 ‘슬픔’이라는/빈집을 세울 때.
짓다가 그만둔 예배당은 너무 커 보인다 지붕이 없어서/밤에는 힘없는 별들이 발을 헛딛기도 했다
아직 더 닳아질 마음이 남아 있구나/갈 만큼 갔다고 생각했는데
외로운 세상의 강안(江岸)에서/문득 피가 따뜻해지는 손을 펼치면/빈 손바닥에 살아 출렁이는 강물
차 열쇠를 찾아 시동 모터를 돌리면/너는 나와 똑같구나 얼마나 오랜/이 반복을 견뎌 여기에 왔니
희망을 빌려 쓰고 갚지 못해 내가 울다.
본다. 눈물인데 그냥 가는 비로 흐르게끔 내버려두는 사람들과 더불어
사랑이나 하자꾸나/맨몸으로 하면 되는 거/하고 나서 씁쓸하게 웃어버리면 되는/그런 거
이 이상한 땅에서는 모두 얼굴이 없다./모자들만 푸르른 어둠의 폐 속에서/웅크린 채 몸에 구멍을 뚫고 있다.
그런데 깨진 유리병들은/어디에 저렇게 많은 금들을 감추고 있었을까
“사라지는 눈사람처럼/ 시간은 처음의 모습으로 반짝이기 시작한다”
“무슨 일이 있거나 어떤 마음이 들면 흰색을 기억해요”